나룻배 애환 뱃사공 노정
포항과 경주를 가로지르는 형산강 양산맥이 그 푸른 물결 위로 고요히 떠 있는 나룻배 한 척이 있다. 해가 뜨고 지는 걸 지켜보며 하루를 보내는 뱃사공은 오늘도 내일도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의 눈빛은 멀고도 가까운 곳을 향해 있다. 그곳엔 과거의 추억이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만남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이 흐르고 강물은 바람 따라 부드럽게 출렁인다. 자연은 그저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평온하지만 그 안을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은 늘 복잡하다.
형산강 물 위에 뱃사공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언젠가 강 저편에서 떠나간 그 사람을 기다린다. 돌아온다는 약속이 있었는지 혹은 그저 떠난 자리에 남겨진 희미한 희망뿐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뱃사공은 오늘도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며 그 속에서 누군가를 찾는다. 그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리고 손은 물결과 노에 닳아 있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마치 그 자리가 그의 운명인 듯 그렇게 나룻배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그에게는 기다림의 상징이자 인생의 무대가 되었다.
양산맥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삶이란 흐르는 물과 같다고 말했지만 그에게 삶은 물 위에 정박한 배와도 같다. 이따금 밀려가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배처럼 그의 마음도 늘 한 곳을 중심으로 회귀한다.
세월이 흘렀다. 모나고 험했던 시간들이 강물에 던져졌다. 더는 돌아오지 않을 기억들이 석양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 모든 세월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뱃사공의 주름 속에 그리고 그의 노를 젓는 손끝에 새겨져 있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오늘을 구성하는 가장 고요한 힘이 된다.
그는 강물의 흐름 속에서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혹시나 들릴까 그리운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강 저편에 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까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뱃사공의 마음은 다시 젊어진다. 기다림은 그를 늙게 하면서도 동시에 살아 있게 만든다.
연락선 나룻배는 단순한 배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희망을 실어 나르는 시간의 배다. 그리고 뱃사공은 그 모든 감정을 묵묵히 견디는 존재다. 그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의 눈과 손은 많은 이야기들은 강물에 녹아 흐르고 구름에 실려 날아가며 석양 속에서 반짝인다.
이제는 나룻배도 뱃사공도 형산강 양산맥에서 사라져 간 지도 오랜 세월, 지금은 다리가 생기고 자동차가 지나가며 사람들은 더 이상 나룻배를 기다리지 않고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 삶의 감성은 여전히 우리들의 마음속에 흐른다. 그것은 바로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이들의 삶에 대한 기억일 뿐이다.
형산강 물결은 지금도 유유히 흐른다. 어쩌면 그 물결 사이 어딘가에 과거의 나룻배 한 척이 조용히 노를 젓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해 본다. 기다림과 그리움 그리고 삶의 세월을 실은 나룻배는 떠나가고 말았다.
형산강 부조장터 물길을 따라온 보부상의 삶
형산강, 그 이름 바람처럼 거세고 물결처럼 깊다. 지금도 그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있지만 눈을 감으면 금세 수백 년 전 부조장터의 웅성거림과 함께 살아 있던 사람들의 숨결이 들려온다.
양산맥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 바람을 등에 업고 청보리가 살랑이는 청심들을 지나면 나룻배 하나 물살을 가르며 부조장터로 향한다. 그 배에는 짐을 잔뜩 실은 일명 장돌뱅이, 이른바 보부상이 타고 있다. 그는 지난밤을 산중에서 지새웠고 또다시 하루를 장터에서 살아 내야 한다.
보부상은 단순한 행상이 아니다. 그들은 물건을 팔고 사는 상인을 넘어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길이었다. 흥정은 그들의 언어였고 고단함은 그들의 일상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짚신 한 켤레에 마른땀 밴 두루마기에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한 줌의 좁쌀까지, 그들의 하루는 피곤함의 연속이지만 삶을 이어가려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버텨낸 날들이었다.
부조장터는 늘 그런 보부상들에게 기회의 땅이자 쉼터였다. 동해에서 잡아 올린 물고기, 형산강 건너의 곡식, 깊은 산골에서 따온 약초와 염색약 — 이 모든 것이 부조장터에서 만나 서로의 가치를 나누고 다시 다음 여정을 준비하게 했다.
하지만 장터는 늘 푸근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허탕 친 장날엔 빈 지게만 무겁고 팔리지 않은 짐을 다시 지고 산을 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형산강변 모래언덕에 홀로 앉아 보부상은 고향을 떠올렸을 것이다. 기다릴 식구들의 얼굴, 따뜻한 밥 한 그릇, 아버지처럼 늙어가는 자신의 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터는 희망이었다. 오늘 못 팔면 내일 다시 오는 것, 그것이 보부상의 삶이자 철학이었다. 어떤 날은 형산강 저편에서 우연히 마주친 옛 친구와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며 고된 길 위의 위로를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 삶을 견디는 자들의 공동체였다.
지금은 고요해진 부조장터 자리에 서면 어디선가 뱃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저 건너 ‘나루 손님 태우세’라는 노래 한 자락이 바람을 타고 흐를 것 같다. 지금은 전시용 부조장터가 있다. 그 모습 옛 것을 재연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